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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학생들  

 


   
서울 시내 D고교 2년생인 신모(17)군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우등생으로 꼽혔다. 하지만 고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생활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다. 부모가 지나치게 공부만을 강요하는 것에 반발해 가출까지 한 적이 있었다.

곧바로 돌아오긴 했지만 부모의 공부에 대한 압박은 여전했고 틀에 박힌 학교생활이 점차 싫어졌다. 그는 돈이나 실컷 벌어 써볼 요량으로 주유소,락카페,편의점 등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를 해보았지만 세상은 신군이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수고비를 못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내년에 고3으로 진학하지만 졸업을 한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해요. 직업훈련학교에 다녀볼 생각도 해보았지만 뚜렷하게 배우고 싶은 것도 없어 고민이에요."

수도권 H대 1년생인 김모(20)양은 요즘 학교를 거의 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패션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부모들의 강요로 본인의 적성과는 상관없는 경영학을 전공으로 택했기 때문이다. 김양은 1학기 내내 고민하다가 2학기 들어 휴학을 하려했으나 집안에서는 차라리 수능시험을 다시 봐서 상위권대 디자인학과로 진학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김양의 생각은 달랐다.

"의상디자이너라는 직업은 학교 간판보다 실무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돼 사설 의상디자인 학원이나 외국의 패션 스쿨에 가고 싶다고 했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결국 김양은 부모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대학공부를 싫어하고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학교에 가지 않는 방법으로 침묵시위를 택한 것이다.

장래 희망이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정모(18)군은 중3 때 아버지가 실직한 이후 가정형편이 어려워 가고 싶던 인문계 고교를 포기하고 상업고 장학생으로 진학했다. 현재 3학년인 정군은 졸업과 동시에 취직, 야간대학에라도 진학하려 하지만 직장 잡기가 어려워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정보도 알아보고 여러군데 서류도 내보았지만 대부분 재학생이라는 것과 실업계라는 점 때문에 거부당하기가 일쑤여서 직장잡기가 정말 하늘의 별따기 같습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이같이 진로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많은 청소년들이 고민하거나 방황하는게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지난 9∼11월 3개월간 청소년들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직능원) 진로정보센터에 진로와 직장에 대해 상담을 요청해 온 건수는 모두 1만1689건. 이중 개인별 대면상담자(413명)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성인 182명(44%) △고교생 122명(29.5%) △대학생 40명(9.7%) △학부모 37명(9%) △중-초등생 각 16명(각3.9%) 등으로 대학생 이하 청소년들이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교육전문가들은 청소년들에 대한 진로지도-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 학벌과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풍조가 팽배해 있고 학교교육도 입시위주로 실시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게다가 교육 정책은 중-고교 평준화와 실업계고교 졸업생의 대학진학 기회를 늘리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등 학생들이 개인의 능력이나 취향을 고려할 겨를도 없이 대입 위주의 획일화에 함몰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능원의 이영대(李永大.44) 상담실장은 "청소년들이 조기에 자신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데다 재능을 발견한다 해도 그것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체제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건국대 김충기(金忠起.60.교육학과)교수는 "특기-적성교육도 사교육비 경감대책의 일환으로 마련돼 당초 취지가 본말이 전도되는 등 뚜렷한 교육목표가 설정되지 못한데다 일선학교의 전문교사 부족, 관련 프로그램 부재 등으로 진로교육이 형식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성갑기자>

■학교 학생 소질-적성 키워줘야
산업사회의 발전과 요구에 따라 교육제도는 물론 입학전형 방법도 복잡다양해지고 있다. 진학을 위한 학과와 학교의 선택도 어렵지만 학교 안에서도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일이 매우 복잡해졌다. 진학과 취업, 계속교육을 위한 체계적인 진로지도가 절실한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일선학교는 진로지도를 위한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청소년들이 진학과 취업의 갈림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교육현장에서도 이에 대한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 학생들로 하여금 어려서부터 다양한 일과 직업세계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넓히고 자신의 소질-적성을 조기에 발견해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 스스로 발견한 소질과 적성을 바탕으로 진학을 준비하고 직업을 선택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교육이 진로교육의 관점에서 새로운 여건을 갖춰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첫째, 우리나라의 이상과 현실에 맞는 진로교육의 목표와 내용체계를 정립하고 이를 교육과정이나 교과서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일과 직업세계를 이해시키고 경험시키기 위한 교육내용이 체계있게 교육과정-교과서에 반영되어야 한다. 소질-적성을 포함한 자아특성과 개성을 발견하고 키워나갈 수 있도록 교육기회가 주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둘째, 각급학교에 진로교육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진로상담-진로정보 서비스를 주기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일이 절실하다. 진로교육센터는 학교 전체의 진로교육 계획을 세워 추진하는 구심체가 되고 모든 학생들의 문제와 요구에 응해 진로정보와 상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셋째, 진로 개발-선택을 과학적으로 돕기 위한 각종 검사도구를 개발하고 검사서비스를 다양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교육당국은 직업적성, 직업흥미, 직업관, 학업성취도 등 각종 진로관련 검사도구를 개발, 일선학교에 공급하고 이를 올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연수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넷째, 전체 교원의 진로지도 역량을 강화하고 진로상담 전문교사를 양성, 각급학교에 배치하는 일도 긴요하다. 각급 교원의 양성-연수과정에 진로교육 강좌를 반드시 마련하고 진로교육센터에는 전문교사를 양성, 배치해야 한다.

다섯째, 교육부를 비롯한 시-도교육청에 진로교육을 전담하는 부서를 마련, 행-재정적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다. 현재 학습및 대학진학에 필요한 지식전달 중심의 행정조직 기능을 개편해 진로지도를 포함시키도록 해야 하며 진로지도에 대한 장학지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張錫敏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수석연구위원>

■외국의 진로교육 사례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 외국에서는 산-학-관(産學官) 협동체제를 통해 청소년들이 어려서부터 다양한 일과 직업세계에 접하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조기에 발견, 진학과 취업을 준비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일찍이 산-학-관 협동교육의 모델로 '학교에서 현장으로'(School To Work) 프로그램을 채택, 학교와 직업현장의 밀접한 연계 속에서 진로지도가 이뤄지고 있다.

STW 프로그램은 학교별,직업현장별 학습과 두 곳을 연계시키는 활동으로 나뉘어 실시되며 영역별로 진로지도와 상담이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학생들은 시간제로 학교에 다니면서 직업현장에 들러 일에 대한 경험을 쌓고 있다. 중-고교생들은 산-학협동 교육과 현장견학, 현장실습, 기업체에서 운영하는 프로젝트 학습 등을 통해 스스로 진로를 탐색하고 직업을 선택한다.

미 연방정부는 94년 5월 '학교에서 현장으로의 기회보장 법안'(STOW)을 제정, 이를 국가적인 사업으로 채택하면서 기초자금 지원과 법적-제도적장치를 마련했으며 산업체에서도 이를 적극 수용, 기존 학교교육의 틀을 과감히 깨트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독일에선 청소년들이 4년간의 기초학교 과정과 2년간 진로지도 단계의 학교를 거치면서 학생 개개인의 적성, 재능, 학업성취력 등을 바탕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진로지도-탐색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이후 학생들은 중등1 과정에 해당하는 △김나지움(대학진학 예비학교) △레알슐레(실무학교) △하우프트슐레(직업예비학교)로 나뉘어 진학하고 3∼4년간의 중등1 과정을 마치면 다시 적성-재능에 따라 △대학진학 △직업훈련 과정으로 들어가는 중등2 과정을 거친다. 중등1 과정은 우리나라의 중학교,2과정은 고교수준에 해당한다.

직업훈련 과정중 주당 3∼4일간은 기업체의 도제(徒弟)제에 편입되고 1∼2일은 직업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이원화 체제'가 핵심이다. 현재 70%가 넘는 청소년들이 '이원화 체제'에 의한 직업훈련을 택하고 있으며 훈련기간은 대개 2∼3.5년. 이밖에 기술수준의 표준화 작업에 바탕을 둔 산-학-관 협력을 통한 직업교육훈련과 직업진로지도가 학교-고용주-조합간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일본에서의 진로지도는 집단지도보다 상담을 통한 개별지도로 이뤄지고 있다. 가정-학교, 학교-지역사회간 연계를 통한 유기적이고 조직적인 진로지도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독일-미국처럼 산-학-관의 연계와 협력을 위한 법적-제도적 뒷받침이나 행-재정적 지원은 다소 미약한 실정이다. <송성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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