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입 속의 검은 잎>

사용자 삽입 이미지입속의 검은 잎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 時作 메모 – (198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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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기형도

1960.
2월 16일(음력), 경기도 옹진군 연평도에서 아버지(奇字敏)와 어머니(張玉順)의 3남 4녀 중 막내로 출생.황해도에서 피난온 부친은 교사를 거쳐 당시 공무원으로 재직중이었다.

1965.
부친이 서해안 간척사업에 실패, 유랑하다가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 정착하여 가족을 불러들임으로써 이사.
걷기도 전에 노래를 배움.
여섯살 무렵에는 한자 투성이인 신문을 읽어 ‘신동’ 소리를 듣다.
’85년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은 [안개]는 이 마을이 배경이 된다. 소하리는 급속한 산업화에 밀린 철거민, 수해 이재민의 정착촌이 되기도 했고 아직까지 도시 배후의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1967.
시흥국민학교 입학. 당시 부친은 마을의 개발에 앞장서는 한편, 성실히 농사를 꾸려나가 집안은 유복한 편에 속하다.

1969.
부친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석에 눕다. 이때부터 가세가 기울며 모친이 가계를 꾸려나가다. ‘그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위험한 가계 1969」에서), ‘열무 삼십단을 이고/시장에 간 우리 엄마/안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 오시네'(「엄마 걱정」에서) 등의 시는 이 무렵의 체험이 시화된 것이다.

1973.
시흥국민학교 졸업. 국민학교 시절 성적은 항상 우등이었으며 노래와 그림에 재주를 보이다. 특히 만화를 잘 그렸고 스스로 수십 권의 만화책을 만들어 동네 사람들이 빌려가기도 하다.

1975.
당시 고등학교 2년이던 셋째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
이 사건이 깊은 상흔을 남기다. ‘어느 날의 잔잔한 어둠이/이파리 하나 피우지  못한 너의 생애를/소리없이 꺾어갔던 그 투명한/기억을 향하여 봄이 왔다'(「나리 나리 개나리」). 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

1979.
중앙고 수석 졸업. 연세대 정법대 정법계열 입학.
교내 문학서클 ‘연세문학회’에 입회, 본격적인 문학수업 시작하다.

1980.
대학문학상인 박영준문학상(소설 부문)에 당선없는 가작으로 입선(「영하의 바람」).

1981.
7월 방위병으로 입대. 안양 근교에서 복무.
안양의 문학동인인 ‘수리’에 참여. 동인지에 「사강리」등 발표. 시작에 몰두, 초기작의 대부분을 이때에 쓰고 습작을 정리하다.

1982.
6월, 전역 후 복학. 「겨울판화」「포도밭묘지」「폭풍의 언덕」등 다수의 작품을 쓰다.
대학문학상인 윤동주문학상(시 부문)에 당선(「식목제」).
신춘문예에 관심을 돌려 응모하여 최종심에 오르내리다.

1984년.
10월, 중앙일보사에 입사.

1985.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를 응모, 당선(「안개」).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다. (「전문가」「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늙은 사람」「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백야」「밤눈」「오래된 서적」「어느 푸른 저녁」.
2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신문사에서 수습을 거쳐 정치부에 배속되다.

1986년.
정치부에서 문화부로 옮김.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주목을 받다(「위험한 가계 1969」「조치원」「집시의 시집」「바람은 그대쪽으로」「포도밭 묘지1,2」「숲으로 된 성벽」). ‘시운동’ 동인, 문단 선후배, 출판관련 인사들과 활발한 교류.

1987년.
여름 짧은 유럽여행. 「나리 나리 개나리」「植木祭」「오후 4시의 희망」「여행자」「장미빛 인생」발표.

1988.
여름, 휴가를 이용 대구, 전남 등지로 홀로 여행(여행기「짧은 여행의 기록」).
문화부에서 편집부로 옮김. 「진눈깨비」「죽은 구름」「추억에 대한 경멸」「흔해빠진 독서」「노인들」「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물속의 사막」「바람의 집 ― 겨울 版畵 1」「삼촌의 죽음 ― 겨울 版畵 4」「너무 큰 등받이의자 ― 겨울 版畵 7」「정거장에서의 충고」「가는 비 온다」「기억할만한 지나침」발표.

1989.
「성탄목 ― 겨울 版畵 3」「그집 앞」 「빈 집」「질투는 나의 힘」「가수는 입을 다무네」「대학시절」「나쁘게 말하다」발표. 가을에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준비하다.
3월 7일 새벽, 종로의 한 극장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다. 사인은 뇌졸중. 만 29세, 독신. 시작메모로 채워진 푸른 노트, 이국에서 온 몇 통의 편지, 꼼꼼히 줄쳐 읽던 몇 권의 책과 소화제 알약이 든 가방을 가지고 있었음. 경기도 안성 소재 천주교 수원교구 묘지에 묻힘(본명 그레고리오).
죽음 직후 유작「입속의 검은 잎」「그날」「홀린 사람」발표되다.
5월, 유고시집「입속의 검은 잎」이 발간되다(시집의 제목은 평론가 김현이 정함).